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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이야기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11주기, 기억해야 할 사건

by 김토익 2014.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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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토익 입니다.

 

이번 포스팅 주제는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11주기에 대한 포스팅 입니다.

 

참사 전날에 날씨가 흐리고 비도 와서 그런지 희생자들이 더 생각나는거 같습니다.

 

2003년 2월 18일에 발생한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는 올해 2014년에 11주기를 맞이합니다.

 

 

 

 

 

(출처 : 위키피디아)

 

 

http://www.daegusubway.or.kr/

 

(대구지하철 참사 희생자 대책위 공식홈페이지)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11주기 추모식

 

■ 일 시 : 2014년 2월 18일(화) 09시 30분

■ 장 소 : 경북대학교 글로벌플라자 1층 경하1홀

 

찾아보니까  15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범시민추모위원회가 그동안 유가족 단체 간의 갈등으로 지금까지 각각

 

추모행사를 열었던걸로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이번에 범시민추모위원회로 합쳐지고 10년만에 한자리에서 한다고 하네요.

 

저도 사건을 대략으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포스팅을 통해 자세히 사건을 파악하고

 

또 모르시는 분들이 검색을 통해 제 포스팅을 본다면 자세히 알수 있게 하기 위해서 검색을 통해서

 

요약 한 부분을 포스팅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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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개요

 

192명 사망자 21명 실종, 151명의 부상자를 나게 만든 방화범 김대한(당시56세)이 장애 판정을 받고 삶을

 

비관하여 다른사람들과 함께 죽을 생각으로 2003년 2월 오전 8시 30분에

가스라이터와 휘발유를 구입해서 안심역 방면으로 운행되는 1079열차의 1호차에 탑승을 합니다.


그리고 1079열차에 불을 붙이고 객실내로 화재가 확산이 됩니다. 이에 운전실 옆에서 소화기를 들고 조기진압을

 

하려고 하지만 가연성 소재였던 전동차 객실은 불을 감당할수 없게 됩니다.


반대방향인 대곡으로 운행하는 1080열차가 상행선 승강장 진입하여 정차함으로써 1079열차에서 발생한 불이 

 

반대편1080열차에 옮겨 붙으면서 불이 더 커지게 됩니다.


1079열차는 정차중이었고 기관사가 승객들에게 대피를 지시했지만, 1080열차는 화재 상황을 알지못하고 역에

 

진입하였기 때문에 사상자 대부분은 1080열차에서 많이 나게 됩니다.


또한 화염과 유독가스로 현장접근이 힘들어 구조가 지연되어서 사상자가 많이 나게 됩니다.


중앙로역 역무원이 종합사령실에 중앙로역 화재사실을 신고하였으나, 종합사령실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119 신고를 하지 않아서 사건이 더 확산 되었고, 1080열차가 중앙로역 승강장에 도착하여 출입문이

 

 자동으로 열렸다가 연기가 전동차 안으로 밀려들자 기관사가 즉시 출입문을 다았는데, 전원이 끊어져서

 

1080열차는 움직이지 못하게 됩니다.


이에 기관사는 출입문을 개방하고 승객대피 안내방송을 실시하지만, 일부 차량에서는 문이 열리지 않았고

 

승객들이 수동으로 출입문을 여는 방법을 몰라 전동차 안에 갇혀 있게 됩니다.

 

그래서 최초 방화가 발생한 1079열차 보다는 1080열차에 피해자가 많이 나오게 됩니다.....

 

 

◇ 문제점

 

1)낙후된 소방기술


-> 지하철 화재진압 기술 및 대비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관련 장비가 절대적으로 부족하였다.

소방차 84대, 소방관, 경찰 등 3200명 출동하였지만 사고 발생 후 3시간 이상이나 구조대 현장진입이

 

불가능 하였다.

 

2)사고 관리 시스템 부재


-> 거시적인 사고 관리 시스템이 존재 하지 않았기에 사망자, 실종자 파악 및 현장 수습 및 보존등에

 

실패하였다.

 

3)부실한 사회 안전망과 저질 전동차


->전철이 가연성 재질로 구성되어있었고 특히 시트가 빠른 속도에 불에 타면서 치명적인 유독가스를

 

발생 시켰다.


1993년 대구도시철도공사가 매입한 전동차량 단가는 1대 당 5억 수준, 선진국에 수출하는 전동차 단가는

 

 약 17억, 서울지하철 단가는 약 8억에 부족하였기에 저질의 전동차가 될 수밖에 없었다.

 

4)휘발유를 함부로 용기에 담아 판매하는 안전 불감증


->주유소에서 자동차 세척용 샴푸통에 휘발유를 판것도 문제로 제기 되었다. 이후 관련 법을 만들었다.

 

 

 

◇ 사고 이후

 

김대한에 대해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으나, 김씨의 장애 상태 그리고 직접 방화한 1079호 열차에는 인명피해가

그다지 없다는 점이 감안(인명피해는 1080열차에 많았다.)되어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교도소에 수감 되어

 

있다가 2004년 8월에 지병 악화로 사망 하였다.

 

사고 이후 정부는 20006년까지 전 지하철 차량에 대한 내장재 교체를 완료하라고 지시하였다.

 

이전에는 가연성 소재인 천이나 면 따위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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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주기가 되지만.. 아직도 유족들이나, 생존자들은 트라우마 등으로 고통 받고 있다고 합니다.

 

다들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내일 하루는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를 생각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생기네요.

 

진심으로 당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이상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11주기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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