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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물

을사늑약 111주년을 기억하는 일본의 양심, 나카츠카 아키라(中塚明) 초청강연

by 김토익 2016.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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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16년 11월 17일 오후 3시 ~ 6시

장소 : 경북대학교 제 4 합동강의실 108호

연사 : 나카츠카 아키라(中塚明) 나라여자대학교 명예교수

주제 : 한국의 불행은 일본의 불행 - 일본의 근대사 연구와 역사교육의 문제점

후원 : 씨알재단 / 의암 손병희 선생 기념사업회


2016년 11월 17일은 대다수 사람에게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으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11월 17일, 그러니까 1905년 11월 17일은 굴욕적인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 되었던 날이다. 올해 2016년 11월 17일은 을사늑약이 체결 된지 111주년이 되는 해이다. 수능도 중요하지만, 을사늑약도 잊지 말아야하겠다.

勒은 억누를 늑이라는 뜻으로, 국가와 국가간의 맺는 조약이 아닌, 약소국은 강대국에게 억눌러 맺었다는 뜻에서 늑약이라고 칭한다. 국제법에 따르면 늑약인 경우 조약이 아니므로 효력이 발휘되지 않는다.



나카츠카 아키라(中塚明) 명예교수의 전공 연구분야는 청일전쟁이고, 동학농민운동은 청일전쟁의 원인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꾸준히 동학농민운동에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한국을 방문 하고 있다고 한다. 올해 88세 라는 말에 청중들이 놀라기도 하였다. 88세에도 대표하는 일본의 양심으로 열정적으로 강연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래는 나카츠카 아키라(中塚明) 명예교수의 강연 내용이다.


일본의 조선침략사연구의 선구자 야마베 켄타로(山邊健太郞)에게서 얻은 두 가지 가르침이 있다.


첫 번째, 조선과의 관계를 빼놓고서는 일본의 근대를 알 수가 없다.

두 번째, 손을 타지 않은 제일차사료를 가지고 연구할 것


1868년 중앙집권 수립하였는데, 일본에서는 메이지유신 [明治維新(명치유신)]이라고 말한다. G7의 나라이면서, 패전후 70년도 지난 현재까지도 미국에게 전면적으로 부속된 나라이다.


일본은 왜 청나라에게 패배했는가?

패전하기 전까지는 역사학자 역시 함부로 역사에 대해서 언급하지 못하게 사회구조화 되어있었다. 하지만 1945년 패전 후, 일본 근대사 연구의 환경이 크게 변했다. 국립국회도서관이 신설되고, 헌정자료실이 창설되었다. 야마베 켄타로(山邊健太郞)는 이 헌정자료실을 자신의 연구실로 삼아 연구하였다. 

1945년 패전 후, 일본은 과거 역사를 청산하지 못했다. 천황의 전쟁책임 관계를 문제로 삼지 않았으며 묻지도 않았기 때문이라는 사견을 갖고 있다. 그래서 만주사변 이후의 전쟁의 책임을 일부 육군 지도부의 책임으로 돌리고, 천황을 비롯하여 일본의 지배계급은 패전 후의 면피를 받고, 혼란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탈아시아적 일본사인식 : '일본은 서구의 나라들과 같은 역사발전의 길을 밟아온 나라다. 영국이나 프랑스 등이 자본주의 사회를 실현하기 이전에 걸어왔던 봉건제도와 같은 봉건제도를 일본도 지나왔다. 그러므로 서구의 나라들과 똑같이 일본은 자주적인 근대화가 가능했다. 그런데 조선이나 중국에는 서구나 일본과 같은 봉건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자주적인 근대적 발전은 불가능하다.' 라는 논법이다. 이러한 논법에 근거하여 일본은 조선과 중국을 서양처럼 개방하고 개화 시켜야하는 존재로 보았다.


시바 료타로 [司馬遼太郞]의 언덕위의 구름 2000만부 팔렸고, NHK에서 3년에 걸쳐(2009~2011) 이것을 드라마화 하였다. 이것을 바탕으로 역사를 배운 일본 국민이 정확히 당시의 조선과 청나라를 이해할 수 없다.

(책 내용 : “한국 스스로는 아무것도 안 된다. 이 왕조는 이미 500년도 지났으며, 그 질서는 노화되었기에, 한국 자신의 의지와 힘으로 스스로의 운명을 열어 갈 수 있는 능력은 전혀 없다고 해도 좋다”고 썼고, 이는 일본의 조선 침략을 정당화하는 ‘조선 정체론’과 정확히 일치한다.)


청일전쟁 당시, 무쓰 무네미쓰(陸奥 宗光)  일본의 외무대신은 <건건록>에 청일전쟁의 외교지도를 자세히 기록하였다. 청일전쟁을 개전하기까지, 어떻게 해갈 것인가를 고심하며 그리고 개전을 실현하고 그것을 어떻게 써내려갔는지 생생하게 기록한 책이다.


청일전쟁은 조선을 위한 전쟁이라고 하지만 이런식으로 거짓을 기록한 것이 일본 역사이다. 동학농민군에 대한 일본군의 제노사이드 작전에서 일본군은 단 한명만이 전사하였다. 1894년 12월 10일 충청남도 연산의 싸움에서 토꾸시마현 출신의 스기노 토라요시이다. 야스쿠니 신사 충혼사에는 스기노 토라요시 상등병은 1894년 7월 29일 일본육군이 일청전쟁에서 최초로 육상에서 청국군과의 교전 <성환전투>에서 전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의 항일투쟁을, 의도적으로 감추고 말하지 않는다. 동학농민군과 싸우다 죽었다는 것을 일본제국의 불명예 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무엇이 역사의 진실이며 사실인가?' 라고 물어보지도 않고, 사실을 거짓으로 바꾸는 일에 일본제국은 나라 전체가 악한 버릇이 들게 했다. 사실을 감추고 거짓말로 바꾸어서 그것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통용되도록 해서,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도록, 일본제국은 청일전쟁=대외전쟁의 그 첫걸음부터 허구의 사실 위에 세운 국가가 되었던 것이다. 

대일본제국헌법 하에서 일본인은 무권상태였다. 육군 외교에 대한 비판은 일체 꼼짝도 못하게 되어 있었다. 정부 군의 고관들은 국민의 비판에 드러날 일도 없이, 불법을 저질러도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고, 또, 책임을 문는 경우도 없고, 국내외에 공표도 못하는 무법을 되풀이 하고만 있었다.

일본제국이 붕괴했는데 가장 크고 깊은 원인은 제국이 허구의 사실 위에 서있었다. 역사의 사실을 지워버리는 것은 결코 되지 않습니다. 

모든 권력은 과거를 자기정당화를 위하여 이용하려고 한다. 흔히 정당화하기 어려운 과거는 억압하고, 좋았던 과거시절을 문맥에서 떼어서 과장하여, 역사를 거짓허구로 바꾸는 것도 사양하지 않는 권력에 의한 과거를 재단하는데 대해서 역사는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만 할 것인가?

정치적 정당화를 위하여 왜곡된 진실을 복원하고, 나아가서 권력의 역사적 정당성을 따져서, 권력을 초월하는 통찰을 미래에 자리를 잡도록 하게 함으로써, 권력으로부터 자립한 역사감각과 비판정신이 함께 사회에 뿌리 내리도록 힘쓰는 것이다.



'올바른 역사는 무엇이고, 진실은 어디까지 왜곡되었는가?' 라는 생각이 머리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특히 마지막 '모든 권력은 과거를 자기정당화를 위하여 이용하려고 한다. 흔히 정당화하기 어려운 과거는 억압하고, 좋았던 과거시절을 문맥에서 떼어서 과장하여, 역사를 거짓허구로 바꾸는 것도 사양하지 않는 권력에 의한 과거를 재단하는데 대해서 역사는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만 할 것인가?' 이 부분이 잊혀지지 않았다. 을사늑약 111주년에 일본의 양심을 만나게 되어 영광이었다.



동학농민운동은 청일전쟁의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 청나라(중국)와 일본중에서 선택을 해야만 했다.

2016년 오늘날

변함 없이 우리는 뜨고 있는 중국편이냐?, 아니면 미국과 일본편이냐?

"어서 골라라! 대한민국아!" 라고 강요를 받고 있다.

한반도 사드 배치로 한발 더 미국과 일본편으로 가는 대한민국이 오늘(2016년 11월 17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차관회의를 통과시켰다고한다.

참 신기하다. 역사는 반복되고, 우리는 그저 과거 일로 알았던 역사가 현재에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 간다. 역사는 반복 된다는 것을 잊지말고, 역사안에서 교훈을 얻는 자세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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