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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인도 끝은 페루(14-15)/6.폴란드(1003-1009)

시인끝페)폴란드 아우슈비츠 투어,기억해야 될 역사

by 김토익 2014.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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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끝페

 

(시작은 인도, 끝은 페루)

 

첫 해외여행을

 

야매 세계일주로 계획한 김토익


검색창에서 시인끝페 또는 김토익 검색하시면 됩니다.


(20140720출국 인도 - 이집트 - 터키 - 그리스 - 이탈리아 현재 폴란드 여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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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41004에 저장된 글 입니다.

 

 

 

 

 

폴란드 아우슈비츠(Poland Auschwitz)

 

"The one who does not remember history is bound to live through it again"

 

GEORGE SANTAYANA

 

"역사를 기억 못한 자 다시 그 역사속에서 살게 될 것 이다." 조지 산타야나

 


 

 

 

 

 

 

오늘은 아우슈비츠 투어가는 날.

 

팜플렛도 꼼꼼히 읽어봤고.. 그래서 내린 결정.

 

이건 투어로 가도 될만 하다는 생각과 소금광산은 혼자가도 될꺼같다는 생각

 

오전 10시 10분에 차량이 호스텔 앞에 온다길래 오전10시에 호스텔을 빠져나왔다.

 

근데.. 사람들 옷 보면 알겠지만 되게 춥다..

 

 

 

 

 

 

 

 

 

내 여행이 어느덧 세달이 다 되어가는데 그 동안 양말 한번도 안 신은게 자랑

 

추워서 신을까 하다가 오늘까지만 샌달을 신자하고 패기넘치게 나왔는데

 

10초만에 후회해버렸다..하하

 

진심 추웠다..

 

바지는 어제 산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행히 잘 맞아서 좋았다.

 

 

 

 

 

 

시도 때도없는 비둘기군단의 습격

 

 

 

 

 

 

 

10시 10분 되니까 버스가 딱 왔다.

 

앞에 3명도 같은 호스텔이던데 딱히.. 말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투어를 신청한 이유는 호스텔에 같이 가는사람들 친해지면 좀 좋을꺼란 생각을 했는데..

 

저 3명 똘똘 뭉치고 나머지 호텔들 픽업하는데 다들 2명씩..오심

 

가족이나 친구들..

 

ㅋ..

 

직감이 들었다.

 

오늘은 왠지 정말 투어만 하다 오겠구나^^ 라는

 

그렇게 차량은 슝슝 달렸다.

 

온화한 미소의 폴란드 할아버지가 운전을 하셨는데 어떻게 운전대만 잡으시면 짐승남으로 돌변 하신다.

 

옆에 앉은 네덜란드 여자(잠깐 몇마디 나눔)가 점프하는 일도 발생했으니..

 

엄청난 짐승남

 

그렇게 졸다가 11:35분경에 도착하였다.

 

 

 

 

 

 

(가이드는 영어로 진행 되었고 기억에 의존해서 적는거기 때문에 틀린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너그럽게 양해 바라며 지적해주시면 즉시 수정 하겠습니다.)

 

아우슈비츠의 폴란드명은 오슈비엥침 이다.

 

딱 도착하니 엄청난 사람들이 있었다.(특히 독일인들이 많이 온다고 함.)

 

우리끼리 하는 작은 여행사 인줄 알았드만 수백명씩 모아놓고 영어 A팀 영어 B팀 독일어 A팀 등등으로

 

즉흥적으로 팀을 나눠서 가이드 하는 방식 이었다.

 

 

 

 

 

뭐 내가 독일어 알아듣는것은 아니니까 영어팀으로 조인

 

 

 

 

 

 

오늘 가이드를 맡아주실 가이드님

 

폴란드 이름으로 뭐셨는데 까먹..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아직 그렇게 경력이 있으신 가이드분은 아닌듯했다.

 

왜냐하면? 선임가이드로 보이시는분이 따라다시면서 진행 하시는것을 지켜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이드 질이 낮은것은 아니였다.

 

아무튼 아우슈비츠 메인 캠프 투어 시작

 

 

 

 

 

 

 

 

 

 

날씨도 참 을씨년스러웠다.

 

그나저나 한글은 참 대단하다. 영어같았으면 그냥 "웨더 이즈 베드", "쏘 콜드"

 

이정도로 밖에 표현 못 할텐데.. 을씨년스럽다라..

 

아무튼

 

날씨도 그렇고 아우슈비츠에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먼저 들어간 6관

 

 

 

 

 

 

 

 

 

 

처음 도착한 유대인들을 남 / 여,어린이 로 나누고 그 상태에서 다시 신체상태별로 나누는 상황을

 

그린 것.

 

 

 

 

 

 

1940년 4월 나치친위대(SS)가 이곳을 세우고 저렇게 수감되는 유대인들을 일일히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나중에 2차세계대전 말이 되어갈때, 그러니까 유대인들의 학살에 탄력이 붙었을때는..

 

사진 찍는것이 힘들어지자 한쪽 팔에 번호를 새겼다고 한다.....

 

그 설명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유대인들이 잡혀왔는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렇게 문신을 새겨 둠.

 

 

 

 

 

 

아까 신체상태등에 따라 등급을 분류한다고 했는데

 

그에 따라서 옷 색깔이 달라진다.

 

 

 

 

 

 

그리고 이렇게 문양도 달라짐

 

 

 

 

 

 

영양상태가 좋지 않은 아이들 모습..

 

 

 

 

 

 

 

이렇게 실제 사진이 복도 양 옆에 붙어있는데 이름 출생 / 사망 등 적혀 있었다..

 

그냥 벽 보고.. 믿기지 않았다..

 

 

 

 

 

고통 받았던 아이들..

 

 

 

 

 

 

 

 

 

 

 

여기 10관에서는 CARL CLAUBERG 라는 독일 박사가 수백명의 유대인들을 상대로 실험을 하였던 곳이다..

 

세계2차대전때 일본군의 마루타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이 10관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여기는 개방하지 않아서 들어가지 못하였다.

 

 

 

 

 

 

그리고 11관 입장

 

 

 

 

 

 

실제 살았던 모습..

 

그리고 지하는 촬영금지(장소에 따라서 플래쉬금지 촬영 허용 / 촬영 금지 이니까 확실히 알아야 함.)

 

낮에도 태양이 안들어오는 지하 독방들을 보고 있으니 기분도 안 좋은데 두통까지 오고 있었다..

 

 

 

 

 

그리고 나와서 추가 설명을 들었다.

 

이렇게 이중 삼중으로 철조망이 되어 있어서 탈출 시도는 불가능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작업장으로 일하러 나갈때 간혹 몇명의 사람들은 탈출을 시도 하였다고 알려주셨다.

 

 

 

 

 

 

그리고 정말 배고픔 그리고 고통에 허덕이던 사람들은

 

그냥 철조망에 뛰어들어서 자살을 시도했다고 한다..

 

이때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우리는 저 철조망에 손가락 살짝 스쳐도 아프다고 오도방정을 떤다..

 

그런데 사람이 사람을 대체 얼마나 고통스럽게 했으면

 

자기 스스로 몸을 저기에 던져서 자살하게 만들까..

 

 

 

 

 

 

여기가 아마.. 유대인들 세워두고 총살했다고 들었던 것 같다.(확실치는 않습니다..)

 

 

 

 

 

 

그리고 건물안에서는 바깥상황을 볼 수 없게 이렇게 창문을 모두 막아 둠..

 

 

 

 

 

 

간혹 말을 안 듣는 죄수들은 여기에 몇일이고 묶어서 죽음직전까지 몰거나 죽게 만들었다고 함..

 

 

 

 

 

 

그리고 4관에 들어갔다.

 

 

 

 

 

 

 

왜 하필 아우슈비츠 였는가 라는 것.

 

아우슈비츠는 전 유럽 기준으로 보았을때 상당한 교통의 요충지

 

 

 

 

 

 

그럼 여기서 우리가 드는 생각

 

왜 유대인은 자기 스스로 아우슈비츠까지 왔는가?

 

그건 나치가 유대인들에게 돈도 주고 집도 준다는 미끼로 유혹을 했다고 함..

 

마치 일제강점기 시대때 우리나라 여성들을 일본군위안부로 끌고 간것처럼 말이다..

 

 

 

 

그럼 여기서 또 궁금점이 생긴다.

 

아우슈비츠가 얼마나 교통의 요지였냐고?

 

여기 보면 알겠지만 유럽각지에서 유태인들이 오게 되는데 심지어 2100km 떨어진 그리스에서도 5만5천명의

 

유태인들이 왔다..

 

얼추봐도 100만명이 넘는 유태인들..

 

(최종 추산은 250만~400만명 학살로 추정)

 

 

 

 

처음 유태인들이 도착하면 나치친위대(SS)는 이렇게 남자 한쪽, 여자 한쪽으로 구분을 한다.

 

(이 모습은 아우슈비츠 제 2캠프 모습)

 

 

 

 

 

 

가스실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샤워실처럼 꾸며놓고 샤워시켜준다는 말하고 가둔 뒤에 가스로 죽이는 것..

 

처음에는 가스양을 조절 못해서 생존자들이 있었지만 나치친위대(SS)는 여러 시행착오 끝에

 

생존자들을 안 살아남게 하는 가스량을 알게 됨..

 

 

 

 

 

 

그 가스실에 쓰이고 남은 통들..

 

 

 

 

 

 

나치가 2차세계대전 전세에서 점점 밀리고 어느덧 아우슈비츠도 뺏길 위기에 처했을 상황에..

 

아우슈비츠의 존재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 급하게 파괴하는 장면들..

 

 

 

 

 

 

유태인 희생자들의 물건들..

 

 

 

 

 

 

 

 

 

 

 

 

 

 

 

 

 

 

 

 

 

 

 

 

사진에는 없지만 나치는 가스실에서 죽은 유태인 여성들의 머리카락을 다른 연료를 위해서 엄청나게 모아둔게

 

있었다..

 

그것을 보고 정말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정말 지구상에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장 무섭다라는 말을 실감 하였다.

 

 

 

 

 

무슨 일 있었냐며 평화로운 아우슈비츠의 현재 모습..

 

그런 모습이 더 소름끼치게 만든다.

 

 

 

 

 

 

 

 

 

 

아우슈비츠 제 1 메인캠프를 벗어나기전 복원한 가스실로 이동해서 가스실을 보았다.

 

내부 촬영은 역시 금지

 

믿기지 않았다.

 

여기서 사람이 사람을 계속 죽였다는게 말이다..

 

내가 여태 다니던 관광지중에 삐끼가 없고.. 셀카 찍는 이들도 없고

 

가이드분들을 비롯해 같이 다니는 조원들마저도 눈이 촉촉하거나 우울한 표정을 짓는 그런 투어였다.

 

그렇게 오전의 제 1캠프(메인캠프) 아우슈비츠 투어를 마치고 잠깐 쉰다음 제 2의 아우슈비츠 캠프로 옮겼다.

 

 

 

 

 

 

오후 2시 20분 제 2의 아우슈비츠 캠프 투어 시작

 

 

 

 

 

 

아까 말했듯이 교통 특히 철도의 요충지였던 아우슈비츠

 

이 철길을 따라 수많은 유태인들이 이 땅에 도착을 했다.

 

 

 

 

 

 

그 기차의 흔적

 

 

 

 

 

 

2캠프는 메인캠프에 비해 훨씬 넓었다.

 

나치가 유태인을 말살 하겠다는 정책은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있지만 확실한 것은 첫번째 도전에서(메인캠프)

 

자신감을 얻었고 그에 제 2캠프의 규모는 더 크게 지었다는 것.

 

 

 

 

 

 

 

 

여기서 목숨을 잃은 유태인들을 기르기 위해서 20가지의 넘는 언어로 적혀있다고 해서

 

혹시나 해서 우리나라어를 찾아보려고 했지만

 

있진 않았다.

 

물론 다른나라 사람들 마음도 똑같았다.

 

자기나라 언어 찾으려고 두리번 두리번

 

 

 

 

 

 

 

 

여기도 가스실 잔해..

 

여기서도 눈물샘이 터졌다..

 

가이드분이 해설하다가 복 받쳐서 눈물 터지시길래..

 

그거 듣다가..

 

음..

 

 

 

 

 

 

바티칸시에서 투어 받던게 갑자기 생각났다.

 

네로황제에게 박해를 받아서 순교한 기독교인들..

 

그걸 묵묵히 지켜 본 오벨리스크..

 

오벨리스크는 그들을 기억한다며 그걸 뽑아서 바티칸 광장에 박았던 그들..

 

저 나무들..

 

저 나무들중에 오래된 나무들은 여기서 목숨을 잃었던 유태인들을 기억하고 있을까..라는 그런 생각

 

 

 

 

 

 

내부 열악한 모습..

 

지금 10월에도 추운데

 

당연히 난방 안되고

 

여기서 얼마나 또 고통 받았을까

 

 

 

 

 

 

 

 

 

 

여긴 화장실

 

 

 

 

 

 

그렇게 투어가 오후 3시 40분경 투어가 종료 되었다..

 

이곳은 우리가 기억을 남기기 위해서 가서 우리의 사진을 찍는곳이 아니라

 

우리가 역사의 기억을 더듬기 위해서 가는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에 셀카를 단 한장도 찍지 않았다.

 

알찼지만 뭔가 유쾌한 기분이 들진 않았다.

 

특히 우리나라는.. 일제에 의해 당했던 역사가 있어서 그런지

 

뭔가 더 짠하게 느껴지고 그랬던 투어..

 

그리고 차를 타러 가는데 외국인 노부부가 나에게

 

"두 유 스픽 잉글리시?"

 

아.. 영어하니까 당연히 영어투어 받죠..

 

"오브 콜스 와이 두 유 에스크 투 미?"

 

"이프 위 로스트 더 가이드 위 올웨이즈 파인드 유얼 엘로우 캡 비코즈 유어 이즈 톨드"

 

길 잃으시면 내가 키 커서 내 노란모자를 찾으셨다고 ㅋㅋㅋㅋㅋ

 

"아이 띵크 디즈 캡 이즈 베터 덴 엄브렐라!"

 

(가이드 분이 분홍우산 따라오라고 들고 다니셨음)

 

그러고 한바탕 웃었다.

 

돌아오는 길에 옆에 또 네덜란드 여자애랑 보고 소감이 어땠어 라는 짧은 이야기 하다가

 

둘다 잠이 들었다.

 

오후 5시 20분 호스텔에 돌아왔다.

 

역시나 와이파이는 안 고쳐짐..

 

아..

 

뭐 와이파이가 되야 크라쿠프를 떠나던가 할텐데

 

이건 뭐 ㅋㅋ

 

 

 

 

 

그래서 투덜 되면서 밖을 나왔는데

 

호스텔 뒤에 시장 와이파이가 터진다..

 

무료로 말이다.

 

서프라이즈

 

 

 

 

 

 

다시 찾은 쇼핑몰

 

 

 

 

 

 

그리고 먹은 케밥

 

글쎄 케밥 = 터키

 

라는 공식이 있는데

 

터키 케밥 보다 폴란드 케밥이 난 훨씬 좋다.

 

이상하지?

 

 

 

 

 

호스텔로 돌아갈까 라는 생각이 들다가 그냥 야경을 보기로 했다.

 

아우슈비츠를 보고 난 뒤 그 뭔가 알수없는 더러운 기분을 쉽게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도전한 폴란드 맥주

 

끝까지 마시진 않고 마시다가 버리는 허세를 부렸다.

 

밤길인데.. 취기올라서 미친짓 할까봐

 

미연의방지 (아 물론 맥주는 술이 아님..)

 

 

 

 

 

 

 

야경은 멋지긴 하지만 인적이 드문드문이라 살짝 무섭기도 함.

 

시간은 오후 7시 30분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

 

 

 

 

다시 만난 교회

 

 

 

아 사람들 여기 다 있었구나

 

무슨 공연하는데..

 

폴란드어로 막 하셔서.. 알아 들을..큐....

 

 

 

 

 

뭐 프라하나 부다페스트 야경도 좋다는데

 

크라쿠프도 이정도면 야경 안밀리는거 같다.

 

특히 교회 성당들 밤에 보면 더 아름답다..

 

여기는 광장

 

 

 

 

 

 

절묘한 달 위치선정 덕분에

 

사진이 더 아름다워보여

 

 

 

 

 

 

 

 

 

 

 

 

 

 

그냥 정처없이 걸었다.

 

 

 

 

 

 

 

 

걷다보니 바벨성 근처라는걸 알고 바벨성 까지는 다녀오자라는 생각이 들었음

 

 

 

 

 

 

 

 

 

 

 

 

 

 

 

저기이 바벨성

 

 

 

 

아니 근데 이 건물 생긴게 터키 이스탄불에 갈라타타워 스럽게 생겼다.

 

그러더니 갈라타타워 입장료 18.5리라가 급 급 생각나서

 

급 급 화가 났다..

 

큐.. 내가 저런 건물에 올라간다고 18.5리라를 썼지..

 

그랬지

 

 

 

 

 

 

 

더 어두워지기전에 돌아가야했다. 오후 8시

 

물론 돌아갈때 무서워서 달려간건 안자랑

 

돌아가니 방의 분위기가 좋아서 당황..

 

막 블라블라 이야기 하고 있었다.

 

이유는 미국아줌마 덕분이었다!(내가 웨얼알유프롬 했을때 처음으로 아임 프롬 어메리카 하신분.

 

다른 분들은 보통 프롬 워싱턴, 프롬 로스앤젤러스 와 같이 도시이름을 알려주심)

 

나 보고 아우슈비츠 투어 어땠냐고 하길래

 

우리나라 역사랑 비슷해서 많이 공감되고 슬펐다고 했더니..

 

...

 

...

 

"쏘리 벗 아 유 프롬 비이트남?"

 

ㅋㅋㅋㅋㅋ 베트남 사칭을 많이하고 다니긴 하지만 베트남이라고 콕 찝어 묻길래 당황

 

알고보니 미국분이라서 베트남을 의식한거였다.

 

그래서 한국이라고 했더니 한국 되고 좋다고 해주셨다.

 

다행히 아주머니 한국 여행 하실때는 나쁜 한국사람 안 만나신거 같다.

 

(보통 그 나라 여행할때는 거기서 만난 그 나라사람에 의해 감정이 많이 교차되니까 말이다.)

 

그러면서 막 흥정하실때 깍아 달라고 하면 한국상인들이

 

"디즈 노 차이나. 잇츠 코리아. 코리아 이즈 굿!"

 

그게 너무 좋으셨단다.

 

중국을 우습게 아는 유일한 나라 코리아ㅋㅋㅋㅋㅋ

 

그리고 밤 늦게 까지 열정적인 나라

 

어딜가도 모든사람이 가능한 영어

 

그렇게 신나게 이야기한뒤 아주머니는 크라쿠프를 떠나 헝가리 부다페스트 가신다고 하셨음.

 

짐이 많으시길래 좀 더 효과적인 짐 정리를 하는법을 알려드림(빛을 발휘하는 군필경험)

 

이름도 모르고 연락처도 교환안했지만 독일 베를린이라는 동선이 겹치기 때문에

 

어쩌면..

 

어쩌면 다시 만나자고 하고 빠빠이했다.

 

카카오톡 스토리채널 아이디 : kimtoeic <- 추가하시면 스토리채널을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밑에 하트 한번씩 눌러주시면 김토익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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