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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인도 끝은 페루(14-15)/5.이탈리아(0923-1002)

시인끝페)바티칸시국 여행기,가톨릭 성지 투어!

by 김토익 2014.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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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끝페

 

(시작은 인도, 끝은 페루)

 

첫 해외여행을

 

야매 세계일주로 계획한 김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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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0출국 인도 - 이집트 - 터키 - 그리스 현재 이탈리아 여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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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20140925)에 저장 된 글 입니다.

 

 

 

 

 

이탈리아 로마 바티칸(Italy Rome Vatican City)

 

 

 

 

 

 

오늘은 바티칸시국 투어 받는 날.

 

아시다시피 나는 정말정말 투어를 싫어한다.

 

유치원생이 된 기분..

 

그런데 친구가 바티칸은 아는만큼 보인다고 꼬옥꼬옥 꼭꼭 바티칸 투어를 받으라고 해서

 

유로나라자전거 바티칸 투어를 신청했다.

 

아주 운 좋게 같은 로마미아 민박에 같이 묵는 K양도 같은 투어라서 같이 가게 되었다.

 

 

 

 

 

 

8시에 와서부터 서 있는 줄.

 

옆줄은 쭉쭉 들어가던데 6개월전부터 미리 예약한 줄이라고..ㅋ

 

위에는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미켈란젤로의 작품은 당연 기대되지만 개인적으로 라파엘로도 좋아하기 때문에

 

상당히 기대 되는 투어였다.

 

 

 

 

 

 

그렇게 9시 넘어서 겨우 입장을 했다.

 

8시부터 와서 줄 서서 이정도..

 

바티칸시국의 인기를 실감

 

역시 가톨릭 성지?

 

 

 

 

 

 

나는 국제학생증이 있었기 때문에 8유로에 바티칸 입장권 얻음.

 

 

 

 

 

 

PINACOTECA 먼저 입장

 

아마 PINACOTECA는 미술관..? 이라는 뜻이라고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번 포스팅은 기억에 의존해서 최대한 전달하는 쪽으로^^

 

 

 

 

 

 

 

왼쪽은 대천사 가브리엘 오른쪽은 처녀 마리아에게

 

"당신은 아기 예수를 잉태할것입니다."

 

라고 전하는 장면이라서 수태고지

 

처녀 마리아에게 이렇게 잉태 할것을 고지하는 수태고지는 르네상스 시대에서 흔하게 사용했던 주제로써

 

수태고지를 주제로 여러가지 그림들이 많다.

 

 

 

 

 

 

 

르네상스 시대는 예술의 재생과 부활등의 의미를 가진다.

 

그렇게 이 그림이 가지는 의미는 원근법까지는 아니지만 원금감을 넣음으로써

 

조금씩 그림의 스타일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라파엘로의 유작이 되어버린 그리스도의변용

 

라파엘로는 르네상스 시대 당시의 엄친아.

 

집안 빵빵, 잘 생긴 외모, 모든 사람을 사로잡는 훌륭한 성격탓에 집 밖을 나서면 지인 50명이 줄줄 따라

 

다닐정도 였다고

 

그런 라파엘로는 미켈란젤로를 싫어했다.

 

이유는 비공개로 그리는 미켈란젤로 실력을 의심했기 때문에..

 

그러다가 호기심에 몰래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훔쳐 본 라파엘로는 큰 충격에 빠지게 되고

 

미켈란젤로의 스프마토기법을 흡수하게 된다.(본래 엄친아라서 가능)

 

선에 집착하지않고 명암의구분으로 그리는 그런 걸 스프마토기법이라고 함.

 

사람들은 라파엘로가 10년만 더 살았어도 바로크 미술은 백년 더 일찍 도래 했을꺼라고 한다.

 

이 유작인 그리스도의 변용 마저도 상단만 그리다가 젊은나이에 요절을 해버리고 제자인 줄리오 로마노에 의해

 

완성이 된다.

 

예수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아이에 손을 대시니 아이가 치유되고..

 

그런 그림

 

 

 

 

 

 

 

르네상스 이후 수많은 예술가들은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빵빵한 돈 덕에 실컷 그림을 그렸다.

 

어떻게?

 

가이드라인 즉, 일정한 틀을 그려서 이렇게 그려야만 멋있어! 하고 말이다.

 

그래서 그 틀을 쉽게 벗어 날 수 없었고.. 돈줄은 끊기고

 

그러다보니 후에 등장한 바로크 양식은 일정한 틀에서 벗어난 삐둟어진 양식이라고 보면 된다.

 

바로크라는 뜻 자체가 일그러진 진주이기 때문이다.

 

이쯤에 등장한게 카라바조

 

그는

 

1. 모델이 있어야 했는데 가난해서 빨리 그려야 하므로 스케치를 안했고 제자들이 없어서 부랑자들 대상으로

 

그림을 그렸다.

 

2. 그래서 종교인들에게 비판을 많이 받았는데 예수가 선택한 사람들이 가장 낮은 사람들이

 

아니겠냐며 반박함.

 

늙지않는미모 성모마리아는 르네상스의 특징이고

 

사실적으로  늙은 성모마리아를 왜곡없이 그린것은 바로크미술의 특징

 

예수가 죽어가는 모습

 

머리에 뒤집어 쓴 늙은여자가 성모마리아 이다.

 

 

 

 

 

 

이건 이름을 까먹었는데..

 

성인으로 지칭 되었던 분도 죽기전에는 고통스러워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런 그림.

 

아는만큼 보인다고 역시 들으면서 그림을 보니까 그림이 더 잘 보였다.

 

 

 

 

 

 

즐거운 점심식사~

 

 

 

 

 

 

교황님의 은총 덕분에 바티칸 안에 식당에서 먹은 피자한조각과 맥주

 

6유로라고 엄청싸다고 좋아라했는데

 

곱하기 1400원하니까 8400원은 함정..

 

아무튼 같은 조 분들이랑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다.

 

블라블라 이야기하다가

 

로마 떼르미니역에서 프랑스 파리냄새가 나지 않냐고.

 

내가 듣다가

 

"도대체 파리냄새는 무슨 냄새에요?"

 

말해서 빵 터지고

 

이태리 남자한테 한번도 대쉬 안 받으면 그건 여자도 아니라고. 나가지 죽어야 한다며

 

아주 신기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 ㅋㅋㅋㅋㅋ

 

확실히 여자랑 남자랑 보는 눈이 다르니까 이탈리아도 다르게 보이나 보다.

 

 

 

 

 

 

뭐 여러 호칭이 붙는 신 아테네의 신이지만

 

궁술의 신이기도 하다.

 

이건 활을 쏘는 아테네의 신 동상

 

 

 

 

 

 

라오콘 군상 (LAOCOON'GROUP)

 

트로이전쟁에서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목마를 남기자 트로이의 대부분은 트로이목마를 성 안으로 넣자고

 

했지만 유일하게 반대했던 제사장 라오콘

 

그래서 후에 신들의 저주를 받는다.(신들은 트로이를 멸망 시키려고 했는데 라오콘이 찬물 부은 격이라서) 

 

거대한 물뱀을 보내 라오콘의 자식들을 질식사 시킨 것.

 

그냥 우리나라 구전동화처럼 이탈리아에서 전설의 전설로 내려오다가 1506년 로마의 한 농부가

 

땅을 파다가 발견!

 

아테노도로스 - 하게산드로스 - 폴리도로스 이 조각한 작품으로

 

이것을 확인한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작품 보다 뛰어나다는 극찬을 했다.(미켈란젤로는 신 아래 자신 그리고

 

그 아래 평범한 사람들 이라고 생각 했기 때문에 극찬이다.)

 

오른쪽 팔 부분이 없었는데 모두 하늘을 향해 쭈욱 뻗은 팔이라고 생각을 하고 복원을 하자고 했다.

 

그런데 단 한사람이 반대한다. 당연히 미켈란젤로

 

근육의형태를 보아 오른쪽 팔은 구부러졌을꺼라고..

 

그래도 미켈란젤로를 무시하고 하늘을 향해 쭈욱 뻗게 복원.

 

하지만 이번엔 1905년에 석재장에서 팔 부분을 찾아서 복원.

 

역시나 팔이 구부러진 모양이었다.

 

미켈란젤로가 어떻게 이렇게 잘 아냐면 그 당시 가톨릭체제 하에 시신 해부가 엄격히 금지 되었지만

 

미켈란젤로는 좀 더 디테일한 모습을 그리기 위해 말 등의 해부를 통해서 이미 근육, 신장등을

 

파악하였다.

 

라오콘의 고통스러워 하는 표정과 고통을 벗어나려고 몸부리치는 모습..

 

그리고 안쪽으로 구부러진 팔 모양..

 

정말 생동감 있게 표현한 작품

 

 

 

 

 

작가 미상의 작품

 

동물의 가죽을 깔고 앉아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헤라클레스로 추정했지만

 

그것이 사자의가죽이 아니고 표범가죽 그리고 발가락사이가 붙어있다는 점등으로

 

헤라클라스가 아니라는 의견이 우세해졌다.

 

그렇게 옥신각신 싸우다가 아킬레스 수하인 아이어스라는 설이 거의 받아드려졌다.

 

아킬레스가 죽은 후 아킬레스의 방패와 갑옷을 친구들의 투표를 통해서 정하기로 했는데

 

자신이 정해지지 않아서 격분

 

밤에 친구들을 죽이러 칼을 휘둘렀는데 아침에 일어나고 보니 다 동물들

 

그래서 자살을 고민하던 아이어스의 모습..

 

훼손이 심하기 때문에 확실하진 않고 그렇게 추정만 된다.

 

 

 

 

 

 

 

이것은 라파엘로의 아테네학당

 

베드로 성당과 비슷한 학당에 54명의 당대 철학자 천문학자 수학자등이 그려져있다.

 

정말 보고 싶었던 작품인데..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다.

 

사진으로 담으면 더 작게 나와..

 

실물은 엄청 큰데 말이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디오게네스, 피타고라스 등 여러명등을 만날 수 있지만

 

특히 이 사람.(앉아있지않고 공중에 떠 있다.)

 

미켈란젤로이다.

 

처음에 라파엘로는 미켈란젤로를 싫어했기 때문에 스케치 부분에서 미켈란젤로가 없었는데

 

미켈란젤로의 비공개 그림을 몰래 훔쳐보고 증오심은 존경심으로 바뀌게 된다.

 

하지만 이미 스케치를 끝낸상태..

 

그래도 미켈란젤로를 그려넣기 위해 앉아 있는 모습이 아닌 공중에 떠 있는 모습을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존경하니까 인물도 훨씬 잘 생기게 그림!

 

 

 

 

 

 

저기 빼꼼하게 우리를 쳐다보는 사람.

 

라파엘로이다.ㅋㅋㅋㅋㅋ

 

화가들은 저렇게 누가 내 작품을 보러왔나 확인을 잘 한다고 함.

 

싱기방기

 

 

 

 

 

그 밖에 많은 작품들이 있었지만 정해진 투어이고 시간도 없고

 

블라블라 빠르게 움직이게 된다.

 

하긴 너무 좋은것들 보니까 다른것들이 눈에 안 차기도하고 (미쳐감)

 

그리고 또 하나 고대하고 고대하던 미켈란젤로의 천장화와 최후의심판을 보러 시스티나(SISTINA)로 이동.

 

미켈란젤로는 본래 화가가 아닌 조각자이다.

 

처음에는 그림을 배우다가 조각에 더 흥미를 느껴서 조각에 무게를 두게 된다.

 

당시 돈 많던 메디치가문은 여러 예술가들을 후원하는데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여러 교육들을

 

무상으로 마구마구 시킨다.(후에 이 인문학적 소양이 작품세계에 크게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추측, 마치

 

스티븐잡스의 인문학적 소양의 배양이랄까)

 

외모 때문에 내면으로 더 깊게 파게 되고 성격도 결백적이고 고독한 성격으로 작품에만 열중하게 된다.

 

아무튼

 

교황이 된 율리우스2세의 최대 업적은 베드로 성당인데!

 

미켈란젤로를 불러서 처음에는 자신의 무덤을 조각을 시킨다.

 

당시 미켈란젤로 나이 29살에 미켈란젤로는 50년 넘게 걸리는 조각상 스케치를 보여준다.

 

교황이 단숨에 승락해서 미켈란젤로는 좋은 돌을 구하러 로마를 떠나서 8개월동안 돌을 채굴해내는데

 

율리우스2세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취소해야만 했다.

 

당시 베드로  성당 지은거 자체가 가톨릭 교회의 모든 제정을 쏟아 휘청거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켈란젤로는 피렌체로 돌아가서 교황이 약속도 안지킨다고 욕을 하고 다님.

 

교황이 좋게 생각할리 없잖아?

 

그래서 함정을 팠다. ㅡ것은 볼로냐에 만나서 화해하며 천장화작업을 부탁하는 것.

 

미켈란젤로의 조건은 단 두가지.

 

1. 비공개로 그릴 꺼임.

 

2. 언제끝나는지는 안 말해줌.

 

교황은 조각가였던 미켈란젤로가 그림을 그려봤자지 라고 생각했고 스스로 떨어져 나가면

 

자신의 체면도 살아 나기때문에 바로 오케이 싸인을 보낸다.

 

미켈란젤로를 돕겠다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있었지만 미켈란젤로는 완벽주의라서 타인에게 맡길 수 없었고

 

그 성격 때문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없어서 결국 혼자 그리게 되었다.

 

그렇게 4년 6개월 후 완성이 되어서 율리우스2세는 천장화를 보러 왔다.

 

처음 천장을 올려보던 율리우스2세 왈

 

"그림을 그리랬더니 누가 조각을 그리래!"

 

하고 사랑믈 시켜서 위에 만져보게 했는데 그것은 조각이 아니라 그림이었다..

 

충격과공포

 

그리고 율리우스2세는 자신이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를 볼 수 있었던 최초의 교황이라고 행복해 했다고

 

한다.

 

 

그리고 최후의심판

 

바우로교황3세의 요구로 그리게 됨.

 

교회의 타락 조짐이 곳곳에서 보이니까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테마를 잡고 그리게 되었다.

 

천장화는 비공개였지만 최후의심판을 그릴때는 공개로 그렸기 때문에 잡음이 심했다.

 

태클 받던 두가지가 있는데,

 

1. 성모마리아랑 예수 빼고는 다 나체라서 외설적이다.

 

2. 지옥부분에 그려져있던 얼굴이 당대 타락한 수도교인들이다.

 

그래도 꿋꿋하게 뚝심으로 밀어버린 미켈란젤로

 

후에 다른 교황이 이 최후의심판 작품을 없애버리려고 외설적인 그림은 지우자! 라는 이상한 법을 만들었는데

 

미켈란젤로의 제자인 다닐라니 단테가 그 외설적인 사람들의 중요부분을 가려서 최후의심판은 생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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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들어가서 실물로 보는데

 

하..

 

정말 율리우스2세가 "저게 그림이라고? 조각이잖아!" 라고 화낸 느낌을 알겠더라..

 

정말 그림이 아닌 조각이라는 느낌이 받을정도로 생동감이 넘쳤기 때문이다.

 

나는 그 고작 20분 목 들고 보는것도 아프다고 찡찡하는데

 

미켈란젤로는 그렇게 목을 들고 4년 7개월을 그렸다..

 

이게 사람이야..?

 

역시 예체능은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나야 해.

 

라고 뼈저리게 느꼈다.

 

졸라맨 밖에 못그리는 나에게는 특히 더.

 

 

 

 

 

 

감동의 쓰나미를 받고 나가는 길

 

 

 

 

 

 

이번에는 베드로 성당

 

"세상에 모든 가톨릭 성당은 이 보다 크면 안된다!"

 

라는 규정으로 사실 상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 베드로 성당

 

뭔가.. 들어서는순간

 

신앙심 충만해지고 천주교 신자 되야 할 것만 같고(실제로 어머님이 천주교라서 나도 진지하게 고민중)

 

 

 

 

 

 

베르니니의 작품 발다키노

 

모든게 청동으로 만들어짐.

 

저 사람들 크기를 보면 저게 얼마나 거대한지 감이 조금은 잡으실듯?

 

청동을 붓다붓다 안되니가 대포도 녹이고 무기도 녹이고

 

그래도 안되니까 로마 판테온 청동 떼다가 녹여서 겨우 만들어졌다고 전해지는

 

정말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미켈란젤로의 22-24살 까지의 작품

 

최초 주문했던 사람이 죽어서 이 작품을 어디다가 버릴까 고민하던 미켈란젤로

 

(왜냐하면 가난해서 이 작품을 피렌체까지 들고 갈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밤중에 베드로성당 앞에 버리고 나왔는데 다음날 아침에 소문이 나기를

 

천사의 작품이 베드로성당앞에 있다고

 

미켈란젤로는 사람들이 알아주니까 기뻐서 갔는데

 

당대의 모든 조각자들의 이름은 나오는데 자신의 이름만 거론이 안됨.

 

그래서 화나서 밤에 끌이랑 망치를 들고 가서 자신의 이름을 새긴다.

 

그렇게 새기고 다시 성당을 나서는데 엄청나게 후회했다고..

 

당시 이 작품은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데 왜 슬퍼하지 않냐는 질타를 많이 받았다.

 

그런데 성모 마리아는 예수가 인간이 아닌 존재라는 것을 알고 절제된 슬픔을 보여주는 것 까지

 

계산을 하고 조각을 했으니..

 

정말 대단한 작품

 

본래는 통유리도 없이 관람이 가능했으나 몇년전에?

 

자신이 미켈란젤로라면서 망치로 피에타를 두들긴 사람이 생겨서 통유리로 철저히 보안하는 중이다.

 

(복원을 했지만 아직도 그 흉터가 작품에 남아있다고 함..)

 

 

 

 

 

 

바티칸 시국 광장에 있던 오벨리스크

 

역시 오벨리스크는 이집트가 짱이야.

 

라고 생각했는데 이 오벨리스크.. 이집트에서 건너온 것.

 

네로황제 경기장에 있던 것인데 거기서 많은 가톨릭 교인들이 순교를 하였다.

 

그 순교를 묵묵히 지켜보던 오벨리스크를 떼와서 바디칸으로 가져 왔다고 한다.

 

(물론 이집트 상형문자 싹싹 다 지우고)

 

 

 

 

 

 

 

 

 

그렇게 감동의 바티칸 투어는 끝났다.

 

정말 여기는 다음에 다시 오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정말 올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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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

  • guardian angel 2014.10.01 19:24

    바티칸 시티 정말 좋네요
    그리고 그림이 정말 예술이네요

    답글

  • 좀좀이 2014.10.03 14:34 신고

    카라바조! 여기서도 언급되다니 놀랍네요. 몰타에 있을 때 카라바조 작품 보았었는데 장난 아니더라구요. ㅎㅎ 하지만 바티칸에서는 미켈란젤로 카라바조보다는 미켈란제로가 주인공이로군요^^
    답글